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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동

도솔천의 엄동설한(嚴冬雪寒)/ 山生 김종명 도솔천의 엄동설한(嚴冬雪寒) 차디찬 겨울바람이, 대지(大地)를 짓누르고, 어두운 숲을 밝힌, 하얀 눈 속을 걸었다. 내린 눈이 꽁꽁 얼어붙어, 하얀 무늬를 깐 눈 위를, 고요하고 느릿한 걸음으로 걷는다. 빈가지에 꽃을 피운, 찰나(刹那) 눈꽃은, 세찬 바람에 흩날리고, 한줄기 햇살에 녹아내리면서도, 갖가지 형상으로, 내 마음을 한 개 한 개 열게 하여, 이윽고 내 심장까지 고동치게 한다. 선운산 도솔천은, 지난 만추(晩秋)에, 만산홍엽(滿山紅葉)으로, 내 심장을 뜨겁게 하였고, 이 삼동(三冬)에는, 순백(純)의 설화(雪花)로, 내 영혼마저 빼앗는다. 혼자보기에는 너무 아까운 설경(雪景), 정적 속에 만발한 눈꽃, 향기도 없는 고귀한 자태에, 정신없이 빠져든 노년(老年)은, 아무 두려움 없이 냉기(冷氣)를.. 더보기
노년의 겨울밤 / 山生 김 종명 노년의 겨울밤 겨울로 접어드니, 차가운 바람소리만 들릴 뿐, 산야는 침묵만 흐른다. 이따금 나뭇가지에서 떨어지는, 낙엽소리만 들리고, 주접떨던 새소리도 멈추었다. 모두를 떨게 하는 겨울, 해 떨어지자마자, 칠흑 같은 어둠이 깔린다. 단잠 못 이루는 밤, 겨울밤이 길다는 것을. 노년은 뒤늦게 알아채린다. 문틈사이로 달려드는 냉기에, 화들짝 놀라며 쓸데없는 회상에 잠긴다. 아직 삼동도 지나지 않았는데, 오지도 않을 봄을 그리며, 수탉도 잠자는 느린 새벽을, 뜬눈으로 기다린다. 이렇듯 노년의 겨울밤은, 삼동 추위보다 더 혹독하다. 2023.12.5. 잠 못 이루는 새벽에... 山生 김 종명 더보기
초겨울 새벽의 회한(悔恨) / 山生 김 종명 초겨울 새벽의 회한(悔恨) 딸랑 한 장 남은 달력. 싫든 좋든 상관없이, 또 일 년의 끄트머리에 섰다. 차가운 바람이 흐르는 적막한 새벽, 인적이 끊어진 길에는, 가로수 그림자만 길어지고, 낙엽들은 차가운 땅바닥에서, 고등어처럼 펄떡인다. 어스름한 가로등 불빛에, 쓴웃음을 짓는 은행나무 그림자, 어디선가 들려오는, 길고양이의 서러운 울음소리, 세월에 짓눌린 내 발자국 소리만, 골목의 정적을 깨뜨릴 뿐, 새벽은 도무지 기척이 없다. 수탉 울음소리가 어둠을 깨우고, 봄빛 같은 햇살이 퍼질 때, 시래기 엮여달고, 김장 준비를 하던, 그 옛날 내 어머님이 그리워, 애꿎은 내 주름살만 만작거린다. 2023.12.1. 삼동(三冬)의 새벽에... 山生 김 종명 더보기
찬바람이 불면 / 山生 김 종명 찬바람이 불면... 한올씩 빠져나간, 머리카락 같은 날이, 이토록 서글퍼지는 것은, 질곡(桎梏)의 삶 때문일까? 티끌 같은 하루가 쌓이면서, 내 육신을 조여드는, 세월의 올가미, 가을이다 싶었는데, 느닷없이 찬바람이 불면, 나뭇가지에 매달린 나뭇잎도, 새파랗게 질린 모습으로 벌벌 떨고, 감미로웠던 가을바람이, 차가운 파편이 되어 가슴을 짓누른다. 아직 사지가 성하고, 정신이 멀쩡하지만, 무심한 세월은, 삼동 추위보다 더 혹독하다. 스쳐 지나는 찬바람은, 모르는 척 슬쩍 고개를 돌린다. 2023.11.20. 찬바람이 부는 초저녁에... 山生 김 종명 더보기
세월무상(歲月無常) / 山生 김 종명 세월무상(歲月無常) 문틈 사이로 비집고 들어온, 차가운 외풍에 화들짝 놀라며, 겨울밤이 길다는 것을, 뒤늦게 알아차린다. 불타는 열정, 쉼 없는 정열로, 밤낮 가리지 않고, 숨 가쁘게 살았던 때는, 왜 그렇게 밤이 짧았는지,.. 계절이 바뀌고 해가 지날수록, 노년의 세월은, 삼동 추위보다 더 혹독하다. 그저 세상의 모퉁이에서, 부질없는 상념만 떠 올리며, 긴 겨울밤 선잠을 일상으로 한다. 달랑 한 장 남은 달력, 애써 모른 척하며 고개를 돌리지만, 흐르는 세월은 어쩔 수가 없다. 이 또한 세월무상(歲月無常) 일 게다. 2022.12.28. 山生 김 종명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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