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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넋두리

고성(固城) 대섬(竹島)은 유년기 삶의 터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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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읍 전경

 

고성(固城) 대섬(竹島)은 유년기 삶의 터전이었다

(경남 고성군 고성읍 수남리 79번지)

고성 대섬(竹島)은,

고성 남포항(철둑) 가는 길 사거리에서,

고성보건소로 가는 길 오른편의 아파트 뒤에,

마치 여름철에 몸에 돋아나는 땀띠처럼,

보일까 말까 한 작은 산이다.

이곳은 예전에는 섬이었다.

대나무가 많아서 대섬, 즉 죽도라고 했다.

대섬이 육지로 변한 것은,

일제 강점기 때 고성중앙고등학교가 있는,

이곳 전체를 매립하면서부터이다.

 

이곳이,

섬이었다는 것은 어릴 적에는 전혀 몰랐다가,

이제야 옛 기록을 통해서 알 수가 있었다.

죽도, 일명 열락산이다.

남문 밖에 있으며,

섬 전체가 대나무로 가득하고 낙열정이 있었다고 한다.

이 조그맣고 볼품없는 산을 가리켜,

열락산이라 불렀다니,

예사로운 산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열락이란 환희의 극치가 아닌가!

낙열정이 있었다는 대섬에는,

정자의 흔적은 찾을 길 없고

대신 섬의 한가운데에 해당하는 산정에는,

고려 말엽에 홍건적을 토벌하는데,

큰 공을 세운 정절공(貞節公) 허기(許驥) 선생의 유허비만,

찾아오는 이를 반가이 맞아줄 뿐이다.

 

이곳에서 쳐다보는,

산 아래 잡다한 건물들은 눈을 어지럽히나,

이곳이 바다였던,

그 옛날에는 정말이지 멋진 풍광이었으리라...

가까운 육지에서 외따로 떨어져,

온통 대나무로 뒤덮인 섬.

사방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으되,

그 바다를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고 있어서,

바다는 호수 같고 파도는 늘 잔물결 일어,

그 물결 따라,

뭇 갈매기들의 울음소리가 끊이지 않았을 것이니,

여기가 바로 열락이 아니었겠는가!

배고픔 속에서도,

티 없이 유년기를 보낸 대섬...

개구쟁이 친구들의 웃음소리가 지금도 귓가에 맴돈다.

유년기의 추억 어린 대섬...

살면서도 몰랐던 어린 시절의 대섬이,

이제 또 삶의 대 변화와 함께,

모든 것이 송두리채 변화한 그곳을,

늘거막에 찾아보았다.

아는 사람이 다 떠나고 없는 그곳을....

 

오늘의 이모저모

옛날 대섬 입구 수남리 남밖 도로 쪽의 풍광

도로가 생기 전의 모습은 이제 오간데 없었다

엣날 친구집인데 모습이 다르다

그래도 옛터는 남아있어 감회가 새롭다

앞에 보이는 골목사이 끝이

옥골이라 불리 동네 앞으로 중, 고등학교 등하교 길이었다

좌측 담은 천호식품 대표 김영식의 옛날집이다

대섬으로 올라가는 길의 풍광

어릴적에는 꽤나 높은 언덕이었는데

지금 올라보니 그때와 감흥이 다르다.ㅋ

내가 살았던 옛집 많이도 변하였네!

뒷집, 옆집, 아랫집 친구들의 옛 모습이 떠 오른다

어릴적에 언덕에서 놀다 절벽으로 떨어졌던

큰집 터인데 많이도 변하였다

어렵고 굶주렸으도 그때가 더 좋은 것 같다

개구쟁이 친구들의 아지터

옛날에는 이런게 없었고

아마 뒤늦게

정절공(貞節公) 허기(許驥) 선생의 유허비 주변을

정리하였는가 싶다

유허비 쪽의 풍광

옛날에는 유허비 뒷쪽에 담벽도 없었고

유허비 뒤에 지금 보이는 건물에 큰집이 있었다

이곳에도 집이 있었고

포구나무라 배고플 때 많이 따 먹기도 하였고

이 일대는 우리들의 놀이터였다

유허비 쪽에서 고성 남산쪽을 바라봄

대섬 끝나는 길에서 아래 쪽을 바라봄

멀리 고성 군청 청사가 보인다

대섬 절벽 뒤에도 이렇게 변하였다

대섬 주변에는 전부 논이였고

앞에 보이는 곳은 큰집 논이였다

과거는 흘러가고 아는 사람도 없는 이곳에

붉은 접시 꽃이 늘건 낭객을 반긴다

 

대섬에서 나와 철둑 가는 길을 바라본다

옛날 친구집을 끝으로

유년기 티 없이 살았던 추억의 길을 걸어보았다

흐르는 곡

고향의 그림자 / 주현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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